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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우주/인문학과 문학

단순한 열정 [에니아르노]

by 굿에디터 2022.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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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은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니에르노 작가의 작품이다.
아니에르노의 작품 대부분은 스스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매우 솔직하고 과감한 묘사가 자주 등장하여 독자와 평론가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고 한다.
‘자아의 글쓰기’라는 용어로 처음엔 생소하게 다가온 모호한 장르 소설 앞에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한 인간이 살아온 궤적을 일인칭 기술로 소설을 쓰다니!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가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라는 대목이 크게 와닿는 순간이었다.
과연 나라면, 내가 인생에서 체험한 부끄럽고 아주 솔직한 순간들까지 전세계 사람들에게 고백할 수 있을까..

아니에르노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소설을 쓰려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결국 사실에 근거한 진솔한 감정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쪽을 택했다고 한다.
평생 궁핍과 소외를 겪었던 투박한 삶을 세련된 언어로 치장하는 일은 자신의 뿌리를 배신하는 것이라 생각해 인류학자의 객관성을 갖고 소위 ‘평평한 문체’로 아버지의 삶을 기록하는 전기 형식의 글을 쓰게 된다.
문학이란 뭔가 ‘열정적이고 감동적’ 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거부한 작가가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아니에르노의 작품은 비교적 짧은 분량의 글이고, 문단 사이의 여백이 많다. 특히 독자의 관심을 끄는 첫 대목은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를 문득 떠오르게 했다.
단순한 열정의 첫 문장은 “올여름 나는 처음으로 텔레비전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았다.” 이다.
뭐지? 싶었다.
소설을 다 읽고 생각해보니 이 첫 문장은 작가 자신이 성에 집착했던 경험을 풀어헤쳐둔 소설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문장이었다.
문체들이 대부분 담담하게 쓰여져서 오로지 사실만을 기록하고자 애쓴 흔적이 보인다. 감동과 재미를 주기위한 인위적 구성이 배제되고 서술적으로 두서없이 있었던 일을 그대로 나열한 듯한 소설이다.
‘단순한 열정’과 ‘탐닉’을 발표한 후 대담에서 자신은 항상 무엇인가를 상실한 후에 ”커다란 공허를 강렬하게 으끼며 그 결핍을 바탕으로 글을 썼고, 일상생활에서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 얌청나게 많은 일을 할 필요가 있었고 그것이 글쓰기와 성생활이라고 고백했다.
‘성’과 ‘글’이 결실을 맺게 된 작품이 바로 단순한 열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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