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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천명관]

by 굿에디터 2017.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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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l  천명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국내도서
저자 : 천명관
출판 : 문학동네 200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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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강한 스토리의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어안이 좀 벙벙할 정도로 쉼없이 읽어내려갔다. 문장을 내려갈때마다 그 장면이 상상되어 머릿속에 그려졌다. 신기하다. 춘희와 코끼리 점보는 꿈에 나왔을 정도.

이 소설은 확실히 매력이 있었는데, 예를들면 "그녀가 누군지 벌써 잊은 건 아니시겠지?" 같은 작가의 뜬금없는 개입은 꼭 밀란쿤데라 소설을 떠올리게 하기도하고, 무지의법칙, 사랑의법칙, 세상의법칙...처럼 현상을 일반화하여 반복되어 말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꽤나 공감갔다. 



1부 부두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죽음이란 건 별게 아니라 그저 먼지가 쌓이는 것과 같은 일일 뿐.

훗날 사람들은 그 이유가 벌들이 벌치기에게 온기를 불어넣어주기 위해서, 라고도 했고 또는 자신을 돌봐주던 주인을 잃은 슬픔 때문이라고도 했고, 또 흑자는 벌치기를 죽인 것이 바로 벌들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소망을 이루기란 어려운 법, 그녀의 인생에서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이제 막 건너온 세상의 법칙이었다.

그러나 물화의 덧없음이여! 생선장수가 그 모든 것이 한낱 허상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꾸어놓게 마련이다. 

금복은 어떻게 태풍이 올 걸 미리 알았을까. 그녀의 몸 속 어딘가에 메뚜기와 같은 초감각기관이라도 숨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범인들이 갖기 못한 특수한 예지능력이라도 갖고 있었을까. 세상에 떠도는 얘기들을 모두 신뢰할 수는 없다.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일점일획 어긋남이 없다는 성서조차 의심을 받는 판국에 세상에 떠도는 얘기를 빋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뚜렷한 반증도 없이 무턱대고 의심만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도 맑은 하늘에 태평양만한 구멍이 나 있다는 이야기보다는 훨씬 그럴듯하지 않은가! 대저, 믿는 자에게 평화가 있나니.

그것은 무지의 법칙이었다. 금복은 비로소 충만한 기쁨 안에 도사리고 있던 두려움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육체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단순한 비극적 측면이었다.

중독된 아편쟁이처럼 하루라도 영화를 안 보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살다보면 누구나 부지불식간에 엉뚱한 미망이나 부조리한 집착에 사로잡힐 때가 있게 마련이다. 예컨대 사랑 같은 것이 그러한 것일 텐데..

당연하지. 보고 싶은 것들은 언젠간 다시 만나게 되어 있어.


2부 평대

다른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그녀의 특별한 재능은 바로 그런 한없이 평범하고 무의미한 것들, 끊임없이 변화하며 덧없이 스러져버리는 세상의 온갖 사물과 현상을 자신의 오감을 통해 감지해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춘희가 금복의 손을 잡고 평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역 주변에 무성하게 피어 있던, 슬픈 듯 날렵하고, 처연한 듯 소박한 꽃의 이름이었다. 이후 그 꽃은 가는 곳마다 그녀의 뒤를 따라다녀 훗날 그녀가 머물 벽돌공장의 마당 한쪽에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간을 보낼 교도소 담장 밑에도, 그녀가 공장으로 돌아오는 기찻길 옆에도 어김없이 피어 있을 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미 초래된 결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마디라도 더 이야기를 보태려는 사람들의 속성은 변하지 않은가보다.

하지만 그 작은 몸뚱이 안에 숨어 있는 거대한 열정은 아직 그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녀에게 '적당히'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사랑은 불길처럼 타올라야 사랑이었고 증오는 얼음장보다 더 차가워야 비로소 증오였다.

금복은 역시 무언가 자신이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피어나는 여자였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즉, 한 인물의 성격이 미리 정해져 있어 그 성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지나친 믿음의 대가였다. 

그리고 곧 내키는 대로 아무 사내하고나 살을 섞는 자유분방한 바람기가 시작되는데, 그것은 어쩌면 평생을 죽음과 벗하며 살아온 그녀가 곧 스러질 육신의 한계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덧없는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점보에게, 사랑을 담아.

춘희는 비로소 생전의 점보가 말하던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것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거였다. 파리가 눈에 앉아도 눈을 깜박여 쫓지 못하는 거였고 차가운 비가 내려도 피하지 못하는 거였으며 다리가 아파도 앉아서 쉴 수 없는 거였다. 춘희에게 있어서 박제된 점보는 더이상 점보가 아니었다. 그건은 그저 검보의 형상을 닮은 짚단과 가죽에 불과했다. 

文의 공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으나 그는 결코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러다면 나도 그게 누군지 대충 알 것 같군요. 언젠가 나도 그 귀신한테 기도를 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자는 내 기도를 비웃더군요. 

아무 데고 십자가만 걸어놓으면 되지 예배를 드리는 데 따로 공간이 필요한 가요? 당신네들이 믿는 그 귀신은 아마도 예배당 안에만 숨어 있는 모양이군요. 

그러나 한번 들은 얘기를 무를 수는 없는 노릇, 한쪽 귀로 들어온 소리가 다른쪽 귀로 빠져나갈 리 없으니 마음 한구석에 슬그머니 자리잡은 의심은 암세포처럼 점점 자라나 어느덧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워버리고 말았다.

저 여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둬야지, 안그러면 제 성질에 미쳐버리고 말 겁니다. 물론 지금도 제정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예 미쳐버리는 것보다야 지금이 낫지요.

눈은 아주 조금씩 멀기 때문에 그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볼 수가 있고, 그것으 머릿속에 차곡차곡 저장할 시간이 남아 있거든. 그러면 나중에 아무것도 볼 수없게 되었을 때 그것을 끄집어내서 볼 수가 있지. 그러니까 그게 꼭 슬픈 것만은 아니란다. 

유년을 상실하고, 고향을 상실하고, 첫사랑을 상실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젊을을 상실해버려 그녀에게 남아 있는 것은 모두가 빈 껍데기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싱그러운 수련의 육체 앞에서 뼈저리게 확인해야 했다. 

그들은 영화를 통해 인생을 이해했으며 영화는 부조리한 실존에 질서를 부여해주었다. 그들은 인생이 아름다운 모험과 달콤한 로맨스가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했고, 불가해하다고 믿었던 세상이 엄격한 시적 정의의 질서 아래 작동한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3부 공장 

왜냐하면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만이 세상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들은 한 줄 또는 두 줄로 세상을 정의하고자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명제가 그런 것이다.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린 사라지는 거야, 영원히.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 네가 나를 기억했듯이 누군가 너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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