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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감성

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by 굿에디터 2015.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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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ㅣ 미야모토 테루 ㅣ 바다출판사


뇌리에서 혼잣말

죽은 남편에게 늘 열심히 말을 거는 유미코와 비슷하게 나는 내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혼잣말을 뇌리에서 시도때도 없이 하는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유미코의 대사처럼 정말 자신의 마음에도 아닌, 뭔가 정체를 알수없는 가깝고 정겨운 사람에게 이야기하듯이 말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지는 모르겠다. 생각이 많은 편인탓도 있을 것 같다. 유미코처럼 타인에게든 아니면 나 스스로에게든 질문을 던지고 의아해하고 어떨때는 황홀했다가도 나를 안아주는 상상을 하며 위로도 했다가도 하는 그런 일상들은 어쩌면 온전히 나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지 않을까 생각한적이 있다. 

책에 인쇄된 문장들은 그냥 머릿속에 생각나는 것들을 가볍게 힘들이지 않고 툭툭 내뱉듯이 적어논 것 같은 느낌이든다. 무엇보다 빨리 읽히고 그 속도만큼 유미코의 생각에 빠져들어 밑줄을 긋거나 종이 끄트머리를 접을 생각조차 못했다. 밑줄긋지 않고 단숨에 읽은 소설이 너무 오랫만이라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찾으려고 책을 다시 한번 훑기까지 했다. [환상의 빛], [밤 벚꽃], [박쥐], [침대차]중에서는 아무래도 [환상의 빛]이 가장 좋았다. 환상의 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영화[환상의 빛]의 원작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좋아해서 많은 작품을 봤지만 아직 [환상의 빛]은 보지 못했다. 보고싶다.



그렇지만 그것도 습관 같은 것이 되어버리면 어느새 죽은 당신에게가 아니라, 그렇다고 자신의 마음에도 아닌,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깝고 정겨운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는 듯해서 그만 황홀해질때가 있습니다. 가깝고 정겨운 그 사람이 대체 누구일까, 저에게는 이것저것 다 알 수 없는 것들 뿐입니다. 당신은 왜 그날 밤 치일 줄 뻔히 알면서 한신전차 철로 위를 터벅터벅 걸어갔을까요... 

-본문중에서

때때로 그렇게 이상한 발작을 일으키는 눈이 사실은 당신의 본성일 거라고, 왜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그러고나서 열흘 후에 갑자기 자살해버릴 낌새를, 왜 저는 바깥으로 쏠린 왼쪽 눈에서 알아채지 못했을까요... -

-본문중에서

그때 감쪽같이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저는 당신이 죽고 나서의 그 며칠간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합니다. 여우한테 홀린 것 같은, 여럿이서 누군가에게 속은 듯한, 그런 멍한 마음속에 흐느끼지도 울부짖지도 못한 채 오직 컴컴한 땅속에 가라앉아 있는 또 하나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본문중에서

세상에서 사라진, 당신이라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왜 죽었을까, 왜 당신은 치이는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선로의 한가운데를 걸어갔던 것일까. 대체 당신은 그렇게 해서 어디로 가고 싶었던 것일까. 저는 그릇을 든 손을 멈추고 설거지대 구석에 시선을 떨어뜨리면서, 지금 바로 죽으려고 하는 사람의 그 마음의 정체를 알려고 필사적으로 이리저리 생각했습니다.

-본문중에서

서른 전후의 한 남자가 들어와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이 지역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도저히 여행자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탁자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 그 사람은 찻집을 나갔습니다. 제가 그 남자를 마음에 담아둔 것은 그 사람이 심한 사팔뜨기였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를 훔쳐온 날 밤, 비비면 비빌수록 심해지던 당신의 눈과 닮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류소에 멈출때마다 내릴까 말까 망설이는 것처럼 엉거주춤 일어났다가 다시 좌석에 주저않고는 했습니다. 제가 그 남자에게서 뭔가 심상치 않은 점을 느낀 것은, 이를테면 제 감상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여기에 죽으로 온거다. 라고 저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남자는 소소기 입구를 한 정거장 앞둔 가와라에서 내렸습니다. 내릴 때 사팔눈으로 힐끗 저를 본 것 같았습니다. 저도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생각도 없이 저는 그 남자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한 정거장 전에 내렸으면서도 그 사람은 바다를 따라 난 얼어붙은 길을 소소기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길에는 저와 그 남자밖에 없었습니다. 털장갑을 낀 손으로 머리에 감고 있던 머플러를 누르면서 저는 흠뻑 젖은 채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때  아주 시커멓던 하늘도 바다도 파도의 물보라도 파도가 넘실거리는 소리도얼음 같은 눈 조각도 싸악 사라지고 저는 이슥한 밤에 흠뻑 젖은 선로 위를 당신과 둘이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힘껏 껴안아도 돌아다봐 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뭘 물어도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피를 나눈 자의 애원하는 소리에도 절대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아아, 당신은 그냥 죽고 싶었을 뿐이었구나. 이유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당신은 그저 죽고 싶었을 뿐이야.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저는 뒤를 쫓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순식간에 멀어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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