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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감성

노예12년 [스티브 맥퀸]

by 굿에디터 201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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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12년 ㅣ 스티브 맥퀸 ㅣ 2014

출연: 치웨텔 에지오포(솔로몬 노섭), 마이클 패스벤서(에드윈 엡스), 베네딕트 컴버배치(포드), 브래드 피트(베스) 


'헝거'와 '셰임'의 연출을 맡았던 스티브 맥퀸이 연출한 노예12년은 제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이다. 브래드 피트가 만든 제작사 플랜비의 작품으로 브래드피트는 제작은 물론이고 영화에도 조연으로 출연해 감독과 배우를 지원했다고 한다. 

                




                                                                   

1800년대 남북전쟁, 링컨, 그리고 노예제의 철폐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했던1800년대 미국의 역사! 1863년 1월 1일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하기 전까지 수많은 일들이 있었었다. 1700년대 후반, 반 노예제 모임이 처음 필라델피아에서 만들어지면서 1780년 펜실베니아 주 의회는 처음으로 <<노예해방법>>을 통과시킨다. 이후 다른 북부 주들도 노예제를 폐지하면서, 이렇게 1800년대 초 중반, 미국은 노예제를 따르는 남부의 노예주(州)와 그렇지 않은 북부의 자유주(州)로 나뉘었는데, 그 이유는, 농경중심 사회에서 일손이 많이 필요했던 남부에 반해 북부는 공업이 발달해 있었고 값싼 흑인 노동자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노예12년 영화에서도 흑인 노예들이 하루종일 목화솜을 따거나, 농사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808년 노예 수입이 금지된 후, 미국 전역에서 자유인 신분의 흑인을 납치하여 신분을 위조해서 노예시장에 거래하는 일이 만연하게 된다. 노예12년 영화에서도 북부에서 자유인으로 가족과 행복하게 살던 솔로몬이 남부로 납치되어 한순간에 노예가 된 것도 이 때문인거다. 노예제의 도덕성, 민주주의의 범위, 자유 노동과 노예제 간의 경제적 이득에 대한 논쟁들은 그 당시 미국 정당 휘그당과 "노우 낫씽"(Know-Nothing)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다. 공화당의 지도자였던 링컨을 포함 북부 정치인들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선언문 구문을 강조해나가며, 노예제 철폐를 위한 다양한 노력과 시도를 한다. 헤리엇 비처 스토가 쓴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1852)>>이 인기를 끌면서 (이 당시 영화 주인공인 솔로몬 노섭이 자신이 12년간 노예로 생활했던 실화를 쓴 책 <<노예12년>>발간되기도 한다.)노예제 철폐의 목소리는 널리 퍼져만 갔지만, 흑인의 95%가 남부에 살았기 때문에 노예해방의 반대목소리 또한 커져만갔다. 1860년 공화당의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남부 주들의 연방 탈퇴의 시발점이 된다. 결국 1861년 4월, 노예제를 지지하던 남부주들이 모여 남부연합을 형성하며 미합중국으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한 뒤,아메리카 남부 연합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항의 섬터 요새를 포격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1865년까지 4년 동안 남북전쟁이 벌어지고, 전쟁 결과 남군이 패하며,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남북전쟁 도중, 1863년 1월 1일 링컨대통령은 노예해방 선언문을 공표하는데 서문은 다음과 같다.


“1863년 1월 1일부터 미합중국에 대하여 반란 상태에 있는 주 또는 어떤 주의 특정 지역에서 노예로 예속되어 있는 모든 이들은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육해군 당국을 포함한 미국 행정부는 그들의 자유를 인정하고 지킬 것이며, 그들이 진정한 자유를 얻고자 노력하는 데 어떠한 제한도 가하지 않을 것이다.” 

 -노예해방선언 서문 중 

이후 〈노예 해방 선언〉은 미국의 건국이념인 자유와 평등 개념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 선언이 선포되었던 당시에는 단 한 명의 노예도 해방되지 못했고, 1865년 1월에 북부의 연방 의회가 노예 제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수정 헌법을 통과한 다음, 1865년 12월에 각각의 주로부터 비준을 받음으로써 전면적인 노예 해방이 가능해졌다. 노예12년의 솔로몬 노섭 또한 정치인으로서는 아니지만, 한 시민으로서, 노예제 폐지를 위해 법정싸움과 운동을 하며 남은 여생을 바쳤다.







No man is good enough to govern another man without that other's consent. 

누구도 다른 사람의 동의 없이 그를 지배할 만큼 훌륭하지는 않다. 

Whenever I hear anyone arguing for slavery, I feel a strong impulse to see ittried on him personally. 

누구든 노예 제도에 찬성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에게 직접 노예 생활을 시켜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12년간 노예로 살아야했던 한 남자의 실화


노예제도가 폐지된 뉴욕 주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 부인과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고있던 솔로몬노섭. 어느날 낮선 이들에게 공연을 제안받아 워싱터으로 향하고, 공연 후, 술을 건네 받아 마시고는 정신을 잃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노예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는 솔로몬! "나는 노예가 아닙니다!" 수없이 외쳐봐도 자유인을 증명해줄 자유인 증명서가 없는 이상, 솔로몬은 노예로 보일 뿐이다. 솔로몬 노섭은 노예주 중에서도 악명높은 루이지애나로 납치되고, 자신의 신분과 이름을 빼앗기고 '플랫'이란 이름으로 12년간 노예로 팔려다니며 끔찍한 경험을 하게된다. 솔로몬의 시선으로 영화가 전개되기때문에, 꼭 학대 당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서, 괜히 숨 죽이고 관람하게 된다. 상상할수도 없는 비애는 솔로몬이나 다른 흑인 노예의 표정, 고요한 발걸음, 묵묵한 노동 속에 드러난다. 구지 윽박지르고 울며 좌절하고 난리치는 극적인 에피소드보다 표정이나 반복되는 일상 모습 위주로 영화를 그렸고, 

그런 모습에서 더욱 숨을 죄어오는 듯한 답답함과 애통함이 느껴졌다. 



내가 뽑은 명장면





주인 '첫번째 포드'의 노예 였을때, 살기위해 깍지발을 하고 하루종일 버티는 장면


처음 만난 주인 '포드'는 인간적인 주인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솔로몬을 인정해주고, 솔로몬 또한 이런 주인 하에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된다. 하지만 포드에게 사랑받는 솔로몬을 마땅치않게 여긴 감시관은 포드를 죽이려하고, 솔로몬은 깍지발을 하고서 어둑해질때까지 겨우 줄에 매달려 살기위한 몸부림을 친다. 주인 포드가 올때까지 그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도와주는 행위자체가 목숨을 걸어야하는 시도이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는것이다. 주인이 오고 솔로몬을 구하지만, 이런 솔로몬을 보호해 줄 수 없다고 판단한 주인 포드는 솔로몬을 다른이에게 팔게된다. 






두번째 주인 '에드윈'의 노예 였을때, 어린 소녀 노예 '팻시'가 솔로몬에게 죽여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장면

두번째로 만난 주인 애드윈은 광기에 찬 악명높은 목화솜 농장 주인이다. 목화솜의 하루 수확량이 늘 뛰어난 '팻시'를 자기 여자로 두면서 자신의 기분대로 잘해주거나 폭행하는 등, 집착하는 애드윈. 애드윈의 부인은 그런 팻시를 못마땅히 여기고 괴롭히고, 못견딘 팻시는 모두가 잠든 밤, 솔로몬을 깨워 간곡하게 부탁한다. 제발 날 죽여달라고.. 차라리 당신 손에 죽겠다고. 팻시는 솔로몬만은 의지했던 거죠. 그동안 묵묵하게만 화면에서 비춰졌던 팻시였기에 그 장면은 눈물이 날 정도로 비통하고 슬펐다. 하지만 솔로몬을 그런 팻시를 위해서 어떻게든 살아야한다는 말밖에는,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게 없다. 어떠한 영웅적인 면모도 보여줄수 없고 어떻게든 자신도 살아내야 하는 노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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